p.49
사회적 상승 찬가는 이제 속빈 강정이 되었다. 오늘날의 경제 상황상 사회적 상승은 결코 쉽지 않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은 대개 가난한 성인이 된다. 소득 기준 하위 5분위 가정 출신자는 스무 명 가운데 한 명만 상위 5분위에 이르렀고, 대부분은 중산층에도 이르지 못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미국보다 캐나다, 독일, 덴마크 그 외 유럽 국가에서 더 많다.
p.51
하버드나 스탠포드 대학생 삼분의 이는 소득 상위 5분위 가정 출신이다. 장학금과 기타 지원책이 후하지만,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하위 5분위 출신자는 4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p.59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를 '나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부정할 수 없는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 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보다 덜 성공적인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된다. 그리고 실패자는 '누구 탓을 할까? 다 내가 못난 탓인데'라고 여기게 된다. 마이클 영에게 능력주의는 추구해야 할 이상적 목표가 아니라 사회적 불화를 불러오는 제도였다.
p.105
요즘 우리는 성공을 청교도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과 비슷하게 본다.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이다. 자유와 당당한 자격을 한껏 강조한다. 성공은 미덕의 증표다.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힘을 내게 해준다. 스스로가 자기 운명의 책임자이며 통제 불능의 힘에 몰려가는 희생자가 아니라고 여기도록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우리 자신을 자수성가하고 자기충족적인 존재로 여길수록,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탓이 아니겠는가. 이 논리는 능력주의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기능한다. 우리 운명이 개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다.
p.108
이런 과도한 스트레스와 힘겨운 노력을 겪은 뒤에 얻은 것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며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라고 여겨지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그렇다 해서 학생들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많은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공공 봉사나 그 밖의 선행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그들을 철저한 능력주의자로 만들었다. 과거 청교도 선배들처럼 그들은 성공이 노력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p.164
어떤 이들은 고학력 대졸자들이 정부를 이끌어간다면 환영할 일이지 문제될 게 무엇이냐고 할지 모른다. 물론 다리를 지을 때는 가장 유능한 엔지니어를, 맹장수술을 할 때는 가장 숙련된 의사를 원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최고의 대학을 나온 국회의원을 원하면 안 될 까닭이 뭘까? 빵빵한 학력을 갖춘 고학력 리더들이 더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더 합리적인 정치 담론을 이루지 않겠는가? 아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함양될 수 없다. 최고의 명문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최근의 역사적 경험은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판단 능력과 표준화된 시험에서 점수를 잘 따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능력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고의 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p.199
능력주의에서 중요한 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된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는 그 자체로는 능력주의의 반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능력주의 옹호론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모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나온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경주를 시작하느냐 그리고 훈련, 교육, 영양 등등에 똑같이 접할 수 있느냐다. 그렇다면 경쟁의 승자는 보상받을 만하다. 누군가가 다른 이보다 빨리 달렸다고 부정의하다고 볼 수는 없다.
p.203
우리는 성공이(스포츠에서든 인생에서든)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것이라 믿고 싶으며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천부적 재능과 유리한 배경의 문제는 능력주의 신념의 소유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노력만으로 칭찬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에 의혹을 제기한다. 이렇듯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우리는 노력과 수고의 도덕적 중요성을 한껏 강조한다. 이러한 왜곡은 종종 올림픽 TV 보도에서 접할 수 있다. 그런 보도를 보면 해당 운동선수가 이룬 스포츠상의 위업은 별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 선수가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한 눈물 빼는 이야기, 그가 뛰어넘은 장애물, 부상이나 어려운 유년기, 고국의 정치적 혼란 등의 악조건을 극복한 성공담 등등을 한껏 늘어놓는다. 이는 압도적 다수(77퍼센트)의 미국인이 현실에 펼쳐진 사회적 상승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나 스스로도 나의 하버드 대학생들에게서 그런 과장된 인식을 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재능과 (대게의 경우) 유복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자신은 노력과 수고 덕분에 하버드에 입학했다고 입을 모은다.
p.207
하이에크는 "내가 가진 재능이 우연히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도덕적 문제도 아니다. 단지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거나 우연히 갖게 된 재능은 분명 다른 이들에게 어떤 가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신의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 아주 흔한지 아주 희귀한지에 대해 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좋은 성품이나 멋진 목소리, 아름다운 용모나 훌륭한 손재주, 뛰어난 위트, 매력적인 성격 등은 대체로 그 소유자의 노력과 무관하다.
p.210
능력주의자는 이렇게 답할지 모른다. "우리는 자연적 재능이 행운의 산물이라 해도, 우리의 노력은 순전히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력과 수고를 통해 얻은 것을 온전히 가질 자격이 있다." 그러면 롤스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노력을 하려는 의지 자체도 그러한 시도도 그리고 흔히 말하는 자격이라는 것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에 근거한 것이다. 노력조차도 시장의 보상이 도덕적 자격을 반영한다는 생각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p.221
나의 재능으로 얼마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얼마나 많은 타인들이 그런 재능을 가졌느냐에 좌우된다. 어쩌다 보니 희귀한 재능이지만 높이 평가되는 재능의 소유자가 되었다면 내 소득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그 사실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능력이며 가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느낀점
이 책은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이야기 한다.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운과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공정하다는 개념이다.
저자가 말하는 불평등 사례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찾아보았다.
첫 번째 사례
명문대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잘 보면 누구나 입학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다.
부유한 가정은 과외, 사립학교, 입시컨설팅 등을 통해 자녀를 입시에서 유리한 위치에 둔다.
우리나라 명문대학 학생들의 부모님은 일반적으로 중산층 이상, 전문직(교사/의사/교수), 공무원, 대기업 종사자 비율이 높다.
부모님의 경제력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을 경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목고/자사고에 진학한 후 명문대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특목고,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서는 1년에 몇 천 만원의 학비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보다 더 앞선 곳에서 출발한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7세 고시가 유행한다. 7세에 유명한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5~6세 때부터 사교육을 시작한다.
출발선이 다른 자녀들에게 시험 점수로 평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두 번째 사례
편의점 알바, 배달 노동자, 청소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은 적절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거나,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할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으면 좋은 직업을 가졌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이들에게는 노력 부족이 아니라 기회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
세 번째 사례
류현진 야구 선수는 2024년 기준으로 한 해 25억 원의 연봉을 받고, 탁구 남자 선수중에 랭킹 1위 장우진은 1억 ~ 5억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국대 탁구 선수 연봉이 공개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금액을 알 수 없지만 기본 연봉이 5억은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류현진, 장우진 선수 둘 다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장우진도 류현진만큼 노력하고 훈련하지만 한국에서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훨씬 낮은 연봉을 받는다.
만약 한국에서 탁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면 장우진의 연봉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연봉 차이는 개인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첫 번째, 두 번째는 기회의 불평등에 속하고 세 번째는 구조적 불평등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시민 저항, 혁명, 사회적 혼란, 경제 위기 등의 사건들이 발생해왔다.
대한민국는 IMF 이후부터 소득 격차 수준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가 커졌으며 부동산 급등으로 자산 격차가 확대 되었다.
사회적 혼란과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저자는 우리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능력주의는 사라져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혈연, 특권이 지배하는 사회보다는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 낫다.
또한 능력주의는 사람들에게 성취욕과 동기부여를 준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유도한다.
능력주의는 필요하지만 보완해야 한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초래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 노력만이 성공의 이유 라는 생각을 바꾸고, 개인의 성공이 사회적 배경과 운에 크게 좌우됨을 인정해야 한다.
- 모든 직업과 노동이 존중받는 문화가 필요하며, 대학 졸업 여부가 아닌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인정받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승자(성공한 사람)에게 보상이 집중되는 반면, 패자는 점점 더 도태된다. 소득 격차를 줄이고, 세금 정책을 개편하여 부의 재분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을 통해서 그리고 느낀점을 토대로 나의 삶을 반추해 보았다.
내가 진심을 다해서 노력을 시작한 때는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 느낀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은 나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능력주의를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 좋은 습관들로 내 삶을 가득 채워나갔다.
그리고 나는 개발자의 직업을 선택했다.
개발자 직업을 선택할 당시에는 처우가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
낮은 급여, 장시간 노동, 열악한 근무 환경이 기본이였다.
모바일 플랫폼이 급격하게 성장을 하면서부터 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좋아졌고, 2020년 팬데믹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개발자 수요가 폭등했다.
나의 노력으로 인해 온전히 지금의 보상을 받았다고 보기에는 두 번의 급격한 IT 성장이 뒷받침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대적 운)
내가 받고 있는 보상 또한 나의 노력 + 시대적 운이 결합된 형태로 해석 할 수 있다.
이번 책은 참 어려운 주제였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두리뭉실한 생각들을 명확하게 정리하여 이곳에 담아내고 싶었지만 이와같은 무거운 주제는 아직 나에게는 어렵다.
좀 더 성장을 한 후 재독을 하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을 잘한다는 것 (0) | 2025.03.23 |
---|---|
결국해내는 사람들의 원칙 (0) | 2025.03.01 |
쓰기의 공식 PREP (0) | 2025.02.03 |
떨지 않고 말 잘하는 법 (0) | 2025.01.23 |
게임 현질하는 아이 삼성 주식 사는 아이 (5) | 2024.12.23 |
일류의 조건 (2) | 2024.11.22 |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7) | 2024.11.15 |
구본형 선생님께 배운 진짜 공부 (7) | 2024.11.10 |